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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요재공>화산재기(華山齋記)휘비(諱斐)
華山齋記 玉川治二十里許에 有華山하니 其一支向西南迤邐數里하야 山勢奇勝하며 前臨大野하고 有長江이 割野橫流하며 名赤城江發源乎任實하니 即雲岩江下流也라 古以丹涉하고 近己建橋하니 風景이 佳麗하고 世稱名區라 中一岡은 世稱雲中半月形이니 於此有負午抱子之封崇四尺而若堂斧者即先祖我成均進士諱斐幽宅也府君天性圭孝幼而失怙하고 隨伯氏司正公하야 攀號哭泣에 能如成人하고 及長에 丁内艱하야 哀毀如不欲生하고 與伯氏廬墓泣血三年如一日하고 又書欲報罔極하야 揭之于座常常目之하니 人皆以爲終身慕러라 文藝가 夙就하야 自弱冠으로 己有聲場屋하고 永樂丁酉에 中司馬兩試하니 俄賦遂初에 無意進取하고 曰奔走要路에 患得患失은 五所耻也라 하니 盖不事王候하고 ○高尚其事는 其素志也라 配全州崔氏衛袍焉하고 其第二子進士諱思履亦繼葬于墓下하고 其七世孫武科宣傳官諱 淵龍은 越一岡而竁焉하니 以三世芬苾로 欲置墳菴一棟未果하니 爲子孫齋恨者久矣러니 何幸徃在甲午得築室四間於墓下하야 三間은 爲墓直居하고 一間은 爲歲事齋宿之所하니 遠近子孫이 來會則不能相容커든 又况墓享日에 天或雨則莫得奠享於墓庭而設位於此室하니 其窘益甚矣라 於是에 宗族成曰齋室增築이 爲可云云하고 因相語曰吾宗數百戶이니 不爲也언정 非不能也니 齋室一棟增築이 何難之有哉아 顧不可以無齋號之先定也거늘 余敬應曰不亦善乎此是追遠報本之彝倫也라 齋則後有華山하니 命以華山齋若何오 僉曰可라 하니 余嗣爲之言曰吾宗은 無以此齋吿成으로 牛吾事己了하고 益敦於報本之義하고 无篤於親之義然後에 可以克不如之譏誚矣리니 勉之哉전 余竊不自勝 微衷之有感하야 爲記顚末如右라 更願吾宗은 來世雲仍이 益爲廓張此齋하여 具完丙舍之體制하고 又遂先壟所在地하야 次第有營建齋室하야 而俾伸今日未盡底誠意焉하라 於是乎記하노라. 歲在 乙丑 八月 既望 十八世孫 南洪 謹識 화산재기(華山齋記) 옥천동쪽 二十리에 화산이 있으니 그 줄기가 서남으로 향하야 수리를 비틀거려 산세가 기승하고 앞으로 큰 들을 임하고 장강이 들판을 갈라 흐르니 이름은 적성강이라. 任實에서 발원하니 곳 운암강 하류이다. 예전에는 배로써 건네였고 근래에는 교량을 가설하였으니 풍경이 가려하고 세칭 명구이다. 그中 一강은 세칭 운중반월형이니 여기에 있는 四척 봉분이 우뚝 솟은 것은 곳 우리 선조 성균진사 휘비(諱斐)의 묘이시다. 부군의 천성이 지효하사 어려서 부친을 여의시고 백시사정(司正公)을 따라 반호곡읍을 능히 어른 같고 이미 장성하여 모친상을 당함에 슬퍼하여 살고저 하지 않음을 같이하고 백 씨와 더불어 여묘할 새 읍혈 三년을 하루같이 하고 또 욕보망극의 뜻을 써서 자리에 걸고 항상 눈여겨보니 사람들이 다 종신모라 하다. 문예가 숙취하야 二十세로부터 과거 장중에 소리가 났고 영락정유에 사마 양시에 합격하니 곳 처음 과거 볼 때부터 진취할 뜻이 없고 말씀하시기를 요로에 분주하며 득실을 걱정하는 것은 나의 부끄러워 하는 바라 하니 대개 왕후를 섬기지 않고 고상하게 사는 일은 그 본래의 뜻이었다. 배위 전주 최 씨는 쌍분하였고 그 二子진사(進士) 휘 사이(諱思履)도 또한 묘하에 계장하고 그 七世孫 무과 선전관 휘 연용(諱淵龍)은 한 등 넘어가서 안장하였으니 三世 향화 받들기로써 제각 一동을 짓코저 하되 못 하였으니 자손으로써 한을 쌓은 지 오래였다. 어찌 다행히 지난 갑오년 간에 집四칸을 묘하에 지여 三칸은 묘직이 살게 하고 一칸은 시제 때에 재숙지소가 되었으니 원근 자손이 모이면 능히 수용할 수 없거든 또 하물며 묘제날에 우천이 되면 묘정에서 향사를 못 하고 이집에다 설위를 하니 그 궁색함이 더욱 심한지라 이에 종족이 다 말하기를 재실증축한 것이 옳다고 하고 서로 말하되 오종이 수백 호이니 안 할지언정 불능은 안이니 제실한 채 짓기가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재호의 선정이 없이는 안 된다거늘 내 경응하여 왈 또한 좋지 않으랴 이것이 추원보본(追遠報本)의 떳떳한 윤기이다. 재는 뒤에 화산(華山)이 있으니 화산재(華山齋)라 명명한 것이었던가. 모두 왈 옳다고 하니 내 이어서 말호대 오종은 이 집을 다 지었다고 해서 나 할 일 다했다고 하지 말고 더욱 보본의 의를 돈독히 하고 더욱 친친의 의를 돈독히 한 연후에 가히 기통하고 꾸짖음 갖지 못함을 면할지니 힘쓸지어다. 내 간절히 미충의 유감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야 위와 같이 전말을 기하노니 다시 원하건대 오종은 내세에 자손이 더욱 이 집을 확장하여 제각의 체제를 완전히 갖추고 또 선산 있는 데 가서 차례대로 또 재실을 영건하야 하여금 금일에 못다 한 성의를 펠지어다 이에 기하노라. 세재을축팔월기망(歲在乙丑八月既望) 十八세손 남홍(南洪) 근지(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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